그래서 얼핏 보면 간단해 보여도 시기에 따라 추는 하카가 다르고 춤을
추는 동작도 맞춰봐야 하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이 소집되면 선수들은 전술
훈련 뿐 아니라 하카 연습도 같이 병행합니다. 올블랙스가 하카를 하는
1분여 동안 상대팀은 멀뚱하게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형평성에
관한 논란이 있어 왔지만 백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이어지는 중이기도 하죠. 그래서 호주 대표팀은 뉴질랜드 대표팀의
하카에 맞서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의 워크라이(War Cry)로 맞불을 놓기도
하고 사모아나 피지 같이 같은 폴리네시안 전통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전통
하카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올블랙스의 하카 퍼포먼스는 전쟁 전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추는
춤인 'Ka mate'입니다. 처음에는 허리를 펴고 무릎을 살짝 굽힌 뒤
'Ka mate Ka mate'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장딴지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Ka ora Ka ora'라고 하며 팔을 허리 높이로 칼을 썰듯이 앞 뒤로 움직입니다.
이때 'Ka ma-te'는 죽음이란 뜻이고 'Ka ora'는 삶이란 뜻입니다. 그 다음
'Ka mate Ka mate whuru whuru'라고 하면서 앞서의 행동을 반복한 다음 손을
배꼽 높이에서 손을 떨듯이 흔듭니다. 그리고
'우카라카 카라카라 라라'를 3번 반복하고 손을 허리에 댄 채 기마자세를
한 다음 'Whi'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뜨고 혀를 길게 밑으로 내밀고 낼름거린
뒤에 손을 머리에 얹고 '우리키키 키라하'를 4번 외치면 끝납니다.
이렇게 마오리족의 전통민속춤인 하카는 현재 뉴질랜드의 정신이며 상징과도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뉴질랜드 학교에서는 하카를 배우는 시간이 있어서
마오리족 뿐만이 아니라 백인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하카를 배우죠.
장기간의 이민정책으로 인해 각 인종이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뉴질랜드는
하카를 통해 국가통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사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바로 옆의 같은 영연방 이민국가인 호주의 예를 봐도 대단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최근 들어 공식적으로 철폐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백호주의를 표방해온 호주가 원주민인 애버리지니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들의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던 것과 달리 뉴질랜드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마오리족의 전통이 영연방 국가이며 백인이
주류인 뉴질랜드의 상징처럼 되었을까요?
그것은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호주나 미국의 원주민
들처럼 백인들에게 정복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백인들에게 멸종에 가까운 학살을 당하고 호주의 애버리지니들과
태즈매니아 원주민이 멸족당한 것과는 달리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은 와이탕이
조약을 통해 백인들과 동등한 관계에서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철저히 서구인의 시각으로 아벨 테즈만과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하는 현재의 뉴질랜드라는 땅에는 마오리족 언어로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뜻의 '아오테아로아'로 불리우던 마오리족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여년전 바다 저편에서 카누를 타고 왔다는 쿠피나 마우이 할아버지를 시조로
섬기는 마오리족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며 토착 종교를 믿고 있었죠. 마오리
족은 폴리네시아의 타히티 섬 부근에 살던 종족으로 10세기경 카누를 타고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고구마, 얌감자, 타로감자, 조롱박 등을 가지고
와서 대부분 뉴질랜드 북섬의 북반부에 정착하여 고구마 재배와 어업에 종사
하였으며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 추장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부족 간에 전쟁
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당시 서구에서 호황을 누리던 포경산업에 종사하는
백인들이 뉴질랜드에 들어오면서 문화적 갈등이 일어나고 마오리족 소유의 땅이
유럽 이주민들에게 무차별로 팔려나가면서 마오리족과 백인들 간의 충돌이 잦아
집니다. 결국 유럽 열강들의 침략에 두려움을 느낀 마오리족 추장들은 1840년
2월 6일 뉴질랜드 북섬의 와이탕이라는 곳에서 주권을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이양하는 대신 부족의 권리를 유지하고 영국의 보호를 받는 조약을 맺게 되죠.
이것이 뉴질랜드 건국의 기초문서라고 하는 '와이탕이 조약'이며 뉴질랜드 사람
들은 조약일인 2월 6일을 '와이탕이 데이'라고 하여 국경일로 지키면서 와이탕이
조약의 기본 정신인 평화와 평등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서구화의 영향으로 마오리족의 문화적 정체성은 나날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현재 뉴질랜드 하층민을 이루는 대부분이 마오리족으로 실업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마오리족의 언어와 종교를 학습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서구식
으로 바뀐 식생활 때문에 WHO 통계에 따르면 마오리족의 70% 이상이 비만과 성인
병에 시달리고 있는 등 종족의 유지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미미하기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와이탕이 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마오리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이 있으며 자신들만의 국기와 국가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와이탕이 조약은 얼핏 보면 영국과 마오리족 간에 동등하게 조약을 맺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열강의 압력에 굴복하여 결국 마오리족
스스로 주권을 영국에게 이양한 것이므로 일제의 식민지배를 경험한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들의 아픈 과거인 대한제국의 을사늑약을 떠올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마오리족 용사의 성스러운 의식이던 하카가 오늘날 관광지의
볼거리로 전락하고 마오리족의 '아오테아로아'가 아니라 영국여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영연방 '뉴질랜드'의 상징이 된 것이 어딘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는 것이며
눈을 부라리고 혀를 내밀면서 죽음과 삶을 번갈아 소리지르는 무섭고 약 올라야
할 하카에서 공포보다 슬픔에 비견하는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