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음악

Let me be there / 길은정의 마지막 콘서트

실크리버 2018. 4. 9. 19:49

길은정의 "Let Me be there"는 동영상이 삭제되어
올리비아 뉴튼존의 노래로 준비 했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60년대 중반 가수로 데뷔해서
70년대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십수년을 세계적인
인기 여가수이자 디바로써,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미녀팝여가수랍니다
출처: http://olibia.tistory.com/287 [올리비아클럽]

Let me be there / 길은정의 마지막 콘서트


휠체어에 앉은 채 '열린음악회'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길은정 (사진 = KBS열린음악회)


말기 암 투병 중인 가수 길은정(43)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무대에 올라 노래했다.

길은정은 9일 오후 녹화가 진행된 KBS '열린음악회'(방송 21일)에 휠체어를 탄 채 무대에 올라 올리비아 뉴튼 존의 'Let me be there'와 신곡 '난 널'을 열창했다. "앉아서 노래하는게 예의에 어긋나 서서 부르고 싶었다"는 그가 결국 휠체어에 의지해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던 이유는 리허설 무대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기 때문.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경쾌한 웃음의 길은정은 이제 휠체어에 의지한 채 노래하는 힘없는 가수가 됐다.

"리허설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어요. 아마도 노래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죠. 영정과 납골당은 준비했고 지금은 주변 물건을 정리하고 있어요."

길은정은 직장암이 골반과 척추로 전이돼 최근 병원으로부터 여명선고를 받았다. 길어야 6개월 짧으면 3개월. 언제 다시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을지 몰라 제작진에게 직접 출연 의사를 밝혔다.

매일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신보 '만파식적'도 발표



"'병원24시'에 출연하고 한 달만에 몸 상태가 더 나빠졌다"는 그는 병원에 누워 보내기에 남은 시간이 아까워 지금도 매일 원음방송(서울 89.7㎒)에서 생방송으로 '길은정의 노래하나 추억 둘'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새 앨범 '만파식적'도 발표했다.

"휠체어와 진통제에 의지해 살고 있지만 남은 시간은 아주 유용하고 쓰고 싶어요. 라디오 방송을 계속하는 것도 방송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에요."

하지만 길은정의 진짜 소망은 "통증으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기 전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인간다움을 잃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은 "말기 암 환자도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고 죽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허용된다면 안락사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낳았다.

전 남편 편승엽과의 12번에 거친 재판에 대해서도 담담히 밝힌 길은정은 "왜 재판을 할 수밖에 없었고, 어떤 과정으로 진행됐는지에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전했다.

먹고있는 약 때문에 목이 자주 탄다는 길은정은 인터뷰 내내 생수통을 든 손을 떨고 있었다.


 

 

 

'시한부' 길은정 '마지막 무대...

 

눈물의 병상, 별세 노래'

 

그는 먼저 갈뿐이다,

 

단지 우리도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따라 

 

갈것이다 !

말기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길은정이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무대에서 노래를 했다.

 

9일 열린음악회 녹화가 진행되고 있는 여의도 KBS홀. 길은정이 열린음악회 무대에서 노래한 것은 3년만으로 본인이 제작진에 직접 출연하겠다고 제안했다.

그가 부른 곡은 올리비아 뉴튼존의 'Let me be there'과 최근 발표한 신 앨범 수록곡 '난 널'. 두 곡 모두 직접 선곡했다.

길은정은 "'Let me be there'은 당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아침이나 저녁이나 내가 그 옆에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고 '난 널'은 '난 널 사랑해 / 난 널 음음음음'으로 끝나는 노래로 마음을 그대로 담은 노래"라고 설명했다.

길은정은 리허설 도중 서서 가수 최성수의 부축을 받으며 노래를 한 후 뒤돌아 서다가 쓰러졌다. 불편한 오른쪽 다리가 말썽을 일으킨 것. 제작진이 모두 놀랐고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열린음악회의 김경란 아나운서는 "아직도 노래를 정말 잘 한다. 예전 그대로다.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힘든 데 꼭 무대에 서야겠다고 한 이유를 묻자 길은정은 "가수한테는 당연한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통증 때문에 무척 힘들지만 내게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유용하고 보람 있게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담당의사는 배와 골반, 척추 등에까지 암세포가 전이돼 있어 3~6개월 정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통보한 상태. 치료방법이 없어 현재는 진통제나 모르핀만 투여하고 있다. 특히 노래를 부를 때 배에 힘이 들어가야 하는데 참고 무대 녹화를 마쳤다.

아픈 질문인 줄 알면서도 편승엽과의 사건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진,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저는 고소를 당했고,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그쪽에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습니다. 허위사실 부분은 무혐의를 받았고,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때문에 100만원 벌금으로 약식기소됐을 뿐입니다. 또 그쪽에서 100만원이 너무 적다고 재판을 걸었고 검사는 똑같이 벌금 100만원을 구형했지만 판사가 실형 7개월을 내렸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쪽에서는 소를 취하하면서 용서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후 재판에 대해서는 잊어버렸습니다."

길은정이 출연하는 열린음악회는 오는 21일 오후 6시에 방송된다.


 

길은정  일기


그리고 또 시작된 통증에 시달렸고
날이 밝아 병원에 다녀왔으며
빗 속을 달려 방송국에 다녀왔다.

그저 일상이 반복되지만
통증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심해질 것이고
내가 버티고 있는 정신력이 언제까지 나를 지탱해 줄 것인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가는 날이
남은이들이 고생스럽지 않은
지독히 추운 날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11월을 화려하게 시작했다.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통증을 제외한다면
마음은 호수처럼 평화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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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81     길은정 2004-11-09. 03:07    조회 : 5020       
제목 : 2004. 11. 8. 준비하기

내일 있을 '열린 음악회' 녹화 때문에
괜시리 마음 동동 거리며 안정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노래 연습을 하지 못했고
또 내일의 무대는 어쩌면 내게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어서였다.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기운이 내 방안을 감돈다.

.......

언니에게는 검은 색 정장을 선물했다.
그것은 상복을 의미했다.

그동안 집에서 음악작업을 하던 미디 프로세서도
음악하는 후배에게 쓰라며 건네주었다.

거의 30여년간 모아왔던,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자료인
LP와 CD 수백장은 원음방송에 자료로 쓰라며 전해주기로 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질 좋은 방송, 정성어린 방송을 만들기위해 필요했던 음악자료
1000여 곡을 오디오 파일에 입력시켰던 것까지 합하면
그 자료는 꽤나 유용할 것이다.

무엇은 누굴주고, 누구에겐 무엇을 주고...
다 주는 것만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언니의 상복까지 준비하는 것을 두고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느끼고 있다.

지난 9월 초,
말기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앞으로는 혼자서 일어나 앉지도, 혼자서 자리에 눕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암덩어리는 점점 커지기만 해
손으로도 만져질 뿐 아니라 육안으로도 구분이 될 정도다.

노래하나 추억 둘을 진행하는 방송시간의 행복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와 통증때문에 1시간 간격으로 깨어
울부짖어야하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길게 기다리고 있다.

일부러 휠체어에 앉은 채
잠을 안자고 새벽까지 버텨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그럴 듯 하지 않았다.

언니는 덩달아 밤 새도록 1시간 간격으로 내게로 와
나를 일으키고 눕히고를 반복하고
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프다고 눈물흘리는, 내 등을 쓰다듬는다.

그러나 그 눈물은 금세 그치고 만다.
이내 내가 우스개 소리를 하거나 장난스러운 말투로 언니를 웃긴다.

"언니이~~~ 우리 요즘, 스킨 쉽이 너무 잦은 거 아냐?"
영화나 CF에 나오는 끈적 끈적한 말투의 성우 목소리
성대모사를 하곤 하기때문이다.

언니는 내 흉내에 웃고
잠깐이라도 우리는 아픈 현실을 외면할 수 있다.

오늘 밤은 과연 몇 십분 정도 눈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 있을 열린 음악회 녹화를 마음으로 준비하며
긴장감에 피로감을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4인조 밴드와 연주했던 음악을
관현악단 편곡으로 대하자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맑고 순수하고자하는 원곡의 느낌이
복잡한 악기 대형과 편성으로 인해 사라지는 단점이 있음을 느꼈다.

잘 하고 싶은데......
나는 분명 뜬 눈으로 밤을 지샐 것이다.
구토를 하고 강한 진통제를 먹고 지쳐 쓰러져 보낼 것이다.
밤새 몇 번이고 언니의 도움을 받아야만
침대에서 자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며
일어나고 눕고를 반복할 것이다.

정말 잘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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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79     길은정 2004-11-02. 00:50    조회 : 16136       
제목 : 2004. 11. 1. 화려한 시작

11월의 시작은 낙엽 비를 내리며 시작했고
그토록 우리 방송팀을 지루하게하고
애간장을 태우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끝을 보게했다.

하루가 다르게 통증을 느끼는 부위는 넓어지고 있다.

몰핀 성분의 알약으로는 통증을 다스리기 어려워
몰핀 주사약을 처방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참을 수 있을만큼 참아보겠다며 미뤄왔던
시술을 받기로했다.

그것은 척추에 가느다란 관을 삽입하고
주사약을 몸 밖으로 빼내 주머니 같은 곳에 넣고 있다가
지독한 통증이 찾아오면
알맞은 양을 척추의 관을 통해 주입시킬 수 있는 시술이다.

물론 그 또한 감염이나 염증등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똑바로 누울 수 없는 등,
생활에서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제는 내가 견뎌낼 수 있는 통증의 정도를 넘어선 상황이라
한번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배에는 장루 주머니가
등의 척추에는 가느다란 줄이 달린 채
이제는 왼쪽, 단 한쪽으로밖에는 누울 수가 없어졌다.

나는 평소에 전혀 느끼지 못하던 특정한 냄새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니가 바른 로션냄새, 치약냄새, 껌 냄새,
후추 냄새, 자동차 배기가스냄새......
또는 헤이즐넛 커피의 향기까지 내 뇌를 자극해
구역질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잦은 현기증이 있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암세포가 뇌 까지 이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뭐 특별히 따로 검사해 볼 필요는 없겠지만....." 하는
의사의 말은 어쩌면 가슴 아픈 말이기도 했다.
검사해봤자,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말이었다.

이제 서서히 말기암의 통증에 지쳐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매일 새벽,
2-3시간 간격으로 울부짖는 나를 향해 달려와
약을 먹이기위해 죽 한그릇, 배 한쪽이라도 꺼내 놓으며
졸린 눈을 비비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참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언니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더니
언니는 내게
"이제부턴 다른사람 배려할 생각 그만하고 너만 생각해..." 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깨어 신음 할 때마다
쪼르르... 언니가 잠자고 있는 방 앞으로 달려가 짖어
언니를 깨워 불러오는 내 친구 강아지 '코코샤넬'이
정말 기특하고 신기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어제는 가족과 함께
납골당에 다녀왔다.
내 자리를 맘에 드는 곳으로 예약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그리고 또 시작된 통증에 시달렸고
날이 밝아 병원에 다녀왔으며
빗 속을 달려 방송국에 다녀왔다.

그저 일상이 반복되지만
통증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심해질 것이고
내가 버티고 있는 정신력이 언제까지 나를 지탱해 줄 것인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가는 날이
남은이들이 고생스럽지 않은
지독히 추운 날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11월을 화려하게 시작했다.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통증을 제외한다면
마음은 호수처럼 평화로울 뿐이다.

 


 

번호. 378     길은정 2004-10-27. 02:12    조회 : 12424       
제목 : 2004. 10. 26. 참아야 복이온다?
말기암 환자의 통증은 지나치다.

오늘도 통증치료를 받기위해
병원침대에 누워, 치료 순서를 기다리다가
견딜수 없을만큼의 통증때문에
찔끔 찔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람이 참 연약하죠?
이까짓 통증때문에, 인간다움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눈물 흘려서 부끄럽네요....."

옷 소매자락으로 눈물 콧물을 닦아내며
의사에게 말했다.

"그런 말 마세요. 제가 병원 개원한지 20년 됐는데요.
20년동안 제가 본 환자 중에, 가장 잘 참는 환자가
바로 길은정씨예요."

의사는 내 척추에 주사를 놓으며 이런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잘 참는 사람 뽑는 대회가 있어, 상이라도 준다던가....
왜 이리도 나는 참고 있는 걸까.

몰핀은 진통효과가 조금 있는 대신
오심, 구토, 오한, 가려움증을 느끼게해 또 다른 괴로움을
느끼게 한다.

한달만에 다시 찍어 본 X-Ray 에는
암세포가 내 척추 꼬리뼈쪽으로 침식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 안 가득한 암덩어리는 이제 손으로도 만져진다.
내 오른쪽 다리는 똑바로 펼수도 없이 구부러진 채 굳어버렸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해도
척추를 자극하는 통증은 나를 자지러지게 만든다.

참는자에게 복이온다고?
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웃으며 방송을 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몸이 그 지경인데 방송은 무슨 방송이냐고
당장 때려치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참,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픈 건 아픈거고,
웃음은 웃음이다.
그 웃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내게,
자신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건강한 이도 있는데.....
그저 참을 수 밖에......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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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72     길은정 2004-10-02. 01:21    조회 : 10430       
제목 : 2004. 10. 1. 나의 선택.

몇년전 아직 파릇하게 젊었던 나이에
나는 '직장암'이라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생소한 암 선고를 받았었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수술을 했고
나는 항문을 모두 드러내고
대장을 잘라 배에 구멍을 내 꿰매 만든 인공항문 (스토마) 보유자가 되었다.
그것은 나를 장루 장애 5급 판정을 받게 만들었고
살아가는 일에 무척이나 번거롭고 신경쓰이며
음식물 섭취나 여행, 일 등에 장애가 되는 모양새였다.

수술 후, 병원의 권유대로
항암 약물치료 몇번과
방사선 치료 전체를 받았다.

그로인한 부작용으로 4년여를 고생하며 통증에 시달렸고
여성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을 영영 잃기도 했다.
처음의 암은 그렇게 내 몸에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내 정신까지 파괴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열심히 방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장루라 불리는 '인공항문' 때문에
다른 사람이 노래부르는 힘 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야,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었다.

함께 노래하던 송창식오빠는 이렇게 말했었다.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하는 가수중에
길은정이 만큼 열심히 하는 가수는 없다"고......

그 말은 맞을 수 밖에 없었다.
내 기력이 딸리니,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몇배의 노력을 해야했다.

그리고 나는 방송 일과
어린이 들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 작업에 정신을 쏟으며
건강상태를 어느 정도 보통으로 유지해왔다.

그러던 2002년 9월,
뜻 밖의 사건이 내게서 터지고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무방비로 놓인 채
2년여를 보내야 했다.

그런가운데서도 방송을 하며
보람을 찾고 기쁨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나쁜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모두를 용서했다.
나쁜 곳도 보지않았다.
타의에 의해 끌려다니는 일은 나를 지치게했지만
자의적으로는 아주 건전하고 진실하고 단순하게 살았다.
2년전
이미 나는 임파선으로 암세포가 전이된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임파선암의 경우
치료방법이란 방사선치료나 항암약물치료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미 겪어 본 그 치료는 받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었었다.

처음 모르고 받았던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내 몸을 얼마나 망쳤는지
이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잘 조절하면서
즐거움을 찾아가려 열심히 일에 집중하고 몰두했다.
그리고 많이 웃었다......

그런데 끔찍한 스트레스는 임파선에 전이된 암 세포를 움직였다.

그것은 혈류를 따라, 또 임파구를 따라 온 몸을 돌다가
하필 내 오른쪽 골반 뼈안에 자리를 잡고
기하급수적으로 세포수를 늘이며 자라났다.

그리고 복부 가득히 암세포가 가득 차 있었다.

암의 특징은
아프다는 증세를 느꼈을 때는 이미 치료할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병원24시 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진 것은
아주 작은 일면에 불과하다.

병원에서는 물론 많은 의사들이 모여
내 케이스를 두고 회의를 가졌고 대책을 세웠다.

그렇게 내 놓은 결론중 하나가
수술이었다.

골반뼈 전체를 잘라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른 쪽 다리를 허리 바로 아래부터 절단하거나
관절을 이어붙여 다리 길이가, 잘라내 진 골반길이만큼
짧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해서 걸을 수 있느냐하면 그것은 아니란 얘기였다.
역시 계속 목발을 짚고 살아야 하고
휠체어에 의지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술로 암을 제거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NO 였다.
이미 임파나 혈류로 퍼졌기때문에 수술을 한다해도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수술 중 사망 가능성도 있고
수술 후, 열흘 또는 한달안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 의료진은 말할 것 같다.
"저희로선 최선을 다했으나... 안됐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나의 가족은 과연 수술을 선택해야 했을까?

수술을 하지 않겠다면 두번째는 방사선치료나 항암치료였다.

그런데 그 치료를 받는다고 암을 치료할 수 있느냐? 는 물음에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 치료는 그저 통증을 완화시키고
암세포의 증식을 저지시키려는 방법이란 것이다.
그런데 그 방사선이나 항암치료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정상세포까지 파괴시키며 다른 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면역력은 더욱 떨어지게 되어있으며
그 좋아하는 방송일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앓아 누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누워서 기력없이 생명을 몇달 연장시키는 치료.
과연 나는, 나의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했을까......

대체요법이나 민간요법.
나는 기본적으로 장루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라
음식이나 한약등을 먹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나는 먹을 수 없다.
장에 탈이라도나면... 그땐 끝장이다.....
나는, 나의 가족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어야할까....

나와 아무 연고가 없는 의사는 수술을 권하기도하고 방사선치료도 권한다.
그것은 의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가까운 이로서 의사들은 그 모든 치료방법을 말린다.
한마디로 치료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저 살아있는 동안 통증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고 통증크리닉에서 일종의 통증을 느끼는 신경을
마취시키는 척추 주사를 맞는 일이 남아있다.
그런데 마약성 진통제는 위를 상하게 만든다.
통증크리닉에서의 치료도 골(뼈)암의 진행에 따라
더 이상 할 수 없어질 때가 오게된단다.
통증을 없애기위해서는 척추에서 신경을 끊어내는 수술이란게 있는데...
그 수술을 받으면 하반신 마비가 되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단다.
그렇다고 암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연 나는, 내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그래서 나와 내 가족은 신중하게 선택했다.
우리는 짧게는 3개월. 길게 보아 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제 모든 것은 내 마음안에 달려있다는 것인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우리는 선택했다.
병원에서의 여명 선고는 잊기로 했다.
그저 언제까지 일지 모르나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밝게 살기로 했다.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싶은 일, 먹고싶은 것
마음대로 하다가 때가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겠다는 선택.

나는 아주 평화로운 마음이 되었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며 시간은 소중하다.
방송하는 시간은 더욱 소중하다.
완성하지 못했던 '오디오북- 책상은 책상이다'도 완성시켜야한다.
동요음반도 만들고 싶다.
나는 바빠야 한다.
그리고 원없이 즐겁게 웃어야한다.
가족들은 나의 마음과 선택을 이해해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박인희 / 모닥불 피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