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신앙 찬양

마음이 온전히 구별 된 사람

실크리버 2012. 2. 28. 12:05

 

마음이 온전히 구별된 사람

민수기14:20~25

2012년 2월 26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낮예배 설교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설교:

어떤 여행자가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로 들어가 몸을 씻고 잠자려 하는데 어디선가 바이올린 연주소리가 들립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자야겠는데 그 연주 소리 때문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종업원을 불러 항의를 했습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으니 소리 좀 안 나게 해 달라”

그러자 그 종업원이 자초지정을 이야기합니다.

“손님, 내일 이 동네에서 음악 연주회가 있는데 지금 저분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무개입니다. 저분이 내일 연주를 하는데 좀 힘들더라도 참아주세요.”

정중히 양해를 구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바이올린 연주소리를 들으니 좀 전에는 그렇게 짜증이 나던 소리가 명연주라는 느낌이 들어 얼마나 듣기 좋은지 기분이 좋아졌답니다. 사람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는 것입니다. 변한 것은 마음인데 마음이 달라지면 환경도 달라지고 미래도 달라집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마음, 이것이 무엇일까요? 이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이 마음이 사람의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흔히 ‘성품’이 좋다, ‘인격’이 좋다하는데 그것은 전부 마음의 일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하는 말이 모든 인생사는 마음먹기 달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전쟁도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평화도 ‘마음’먹기 달렸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이 마음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 중심, 그것이 뭡니까? 우리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평가기준은 외모(外貌)이지만 하나님은 중심, 즉 마음이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의 주인공은 ‘갈렙’입니다. 이 사람은 모세 시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모세를 따라 나온 유다지파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선택된 12명 속에 유다지파 대표로 선택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그는 어떤 사람인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다시 보세요.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서 그를 “내종”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그들과 달랐던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온전히 따랐다”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다른 사람, 마음이 구별된 사람” 그 사람이 갈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행동도 달랐고 언어도 달랐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가 누린 복도 다른 사람이 누렸던 것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그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배경은 민수기13:30절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하나”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보고를 하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능히 이긴다고 보고 했습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은 정반대 이야기를 합니다.

31절을 보세요.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합니다.

그들은 백성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합니다. 그리고는 그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고 그 땅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황을 보고 왔는데 결과 보고는 정반대였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마음이 그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인간의 전인격을 통제하는 센터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말도 행동도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갈렙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기에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할까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기에 하나님이 그를 들어 쓰셨을까?

 

1. 그는 말씀을 온전히 좇았습니다.

본문 24절을 다시 보세요.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말씀을 온전히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렙은 모세를 40년간 따르며 시중 든 사람입니다. 그의 친구 여호수아는 그 모세의 시종으로 따랐고,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자로 모세를 따랐습니다.

 

여러분! 모세는 누굽니까?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세를 하나님 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취급하시고 무섭게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게를 향해 돌을 들어 치려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진명시키려하자 모세가 중보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 놓고 용서를 받게 합니다.

모세를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들어볼까요? 민수기12장에 보세요.

‘미리암’이라는 모세 누이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잘 아시다시피 모세가 갈대상자에 담겨져 강에 버려질 때 그 상자를 멀찍이 따라가다가 애굽 바로왕의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였을 때 나타나 천연덕스럽게 자기 엄마를 유모로 소개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친엄마 젖을 먹일 수 있게 했던 여인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미리암의 눈에는 모세는 육신의 동생으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도자 모세가 구스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때 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고 나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시더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시더냐?”하며 비방합니다. 아마도 모세가 처신한 것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를 동생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비방하고 험담했던 것입니다. 실상 모세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함께 비방하는 말을 하나님이 들으셨는데 그 미리암에게 무서운 벌을 내립니다. 문둥병, 나병이 들게 하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분명 모세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상하리만큼 일방적으로 모세 편을 들고 미리암을 심판하십니다. 결국 아론이 나서서 모세에게 용서를 요청했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병이 치유 받게 하십니다. 왜 아론은 건들지 않고 미리암만 쳤을까 그것도 이해가 안 되지요? 아론은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해야 하기에 그냥 봐 준 것이라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은 이토록 일방적으로 모세편일까요?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신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에 허물이 있어도 그를 책망치 않고 미리암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오늘 갈렙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갈렙이 주님을 온전히 따랐다는 것은 갈렙이 모세를 온전히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온전히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종은 허수아비가 아닙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종이 아닙니다. 주의 종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은 특별한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를 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습니다. ‘온전히’ 따랐다는 것이 뭡니까?

어떤 말씀이든지 순종하고 철저히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안하는 것은 온전히 따른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지 않아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좇았습니다. 그러기에 다 이루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가 뭡니까? 온전히 따르는 사람입니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눅9:23절을 보세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져라”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제자가 되려면 내 생각 내 경험 내 형편 앞세우지 말고 다 내려놓고 ‘예’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를 따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아니요”라고 하는 사람은 제자가 아니고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제자가 못됩니다. 제자는 스승의 말에 무조건 “예”해야 합니다. “아니요”라고 하면 언젠가는 등을 돌리게 됩니다. 가롯 유다가 그래서 떠난 것입니다.

옥합 향유사건 때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자들 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할 때 예수님이 가만두라하시며 오히려 그를 칭찬하고 그 일을 기념하라 합니다. 그때 가롯유다가 속에서 ‘아니요’ 했단 말입니다. 성경에 없어요. 그러나 분명 아니요 했습니다. ㅎㅎㅎ 그러니 등을 돌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특징이 뭔가를 보세요.

공부 잘 한 사람들입니까? 똑똑한 사람들입니까? 돈 많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평범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좀 단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주님의 요구를 그저 망설이지 않고 수용하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릅니다. 심지어 그물도 버려두고 부모도 버려두고 따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평범한 사람들을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게 만드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주의 종이 가르치고 명하는 것도 잘 따르시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게 떨어지면 내 형편과 처지에 맞지 않아도 따라야 합니다. 내 능력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해도 따라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는 말 속에는 “기쁨으로 자원하여 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할 수 없이하고, 억지로 하고, 불평하며 하며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헌신은 하나님도 거북해 하십니다.

따라서 하세요.

/나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 /이런 영광을 주시다니 /황공무지로소이다/ 하고 자원하여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본인도 복이 되고 받으시는 하나님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기뻐하여 섬기면 하나님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갈렙도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섬기고 있나요? 어떤 기쁨이 있고 어떤 감사가 있나요?

모든 섬김과 헌신에는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와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왕에 예배드립니다. 이왕에 드릴 것이라면 기쁨으로 드리셔야 합니다. 옆사람 좀 쳐다보세요. 기쁨이 있습니까? 얼굴에 감사가 있습니까.

 

예배시간에 찬송을 드리는 것도 그렇고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예배드리는 얼굴을 보면 오만상을 찌그리며 부르면 그 예배를 받으시겠나요?

억지로 마지못해 하지 마세요. 기쁨으로 드려야 하고 감사함으로 드릴 때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습니다. 어린아이는 이거해라 저것 해라해야 합니다. 그러나 권사 정도 되고 안수집사 되고 구역장, 강사, 교사 정도 되면 스스로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왜 같은 시간에 나와 예배하는데 하나님은 누구 것은 받으시고 누구 것은 안 받으시나요?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서는 받으셨나요?

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 제물은 안 받으신 것입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이왕에 드리면서 억지로 드리거나 인색하게 드리면 그것이야 말로 미련한 자의 모습입니다. 기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도 영광이 되고 드리는 본인도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배 누굴 위해 드립니까? 헌금, 누굴 위해 드립니까? 하나님을 위해서요?

천만에요……. 마6:20절을 보세요.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너희를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은행에 저축은 누굴 위해 합니까? 은행장을 위해 하나요? 국가를 위해 하나요? 천만에요.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대통령을 위해 예금하나요? 정신 나간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도 자신을 위해 온전히 기쁨으로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행복해지고 받으시는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3. 그는 끝까지 지도자를 따랐습니다.

갈렙은 모세를 40년간 따릅니다. 그리고 모세가 죽자 그의 친구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따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동기생입니다. 가나안땅 정탐에 함께 나섰던 동기생입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대권을 넘겨받습니다. 그런데 그때 갈렙은 성경 어디를 보아도 불평이 없습니다.

그도 인간입니다. 동기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데 자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불쾌하잖습니까? 아니 배가 아프잖습니까? 그런데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변함없이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시작은 좋았는데 끝이 흐지부지하고 뒤끝이 안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정치세계를 보세요. 배신 갈등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 한참 대두되는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 자기가 처한 위치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주인공 ‘갈렙’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따릅니다.

 

갈렙은 유다지파의 대표자입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지파 출신입니다. 그런데도 한마디 불평도 안합니다. 이것이 그의 위대한 점입니다.

다만 그는 말씀의 언약대로 자기 권리는 누립니다. 과거 모세가 갈렙에게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수14장에 보면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찾아와 말합니다.

7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모세가 맹세를 했습니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그러기에 그는 여호수아에게 당당하게 헤브론 산지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85세 나이인데 아낙자손이 살고 있는 산지를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든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 특권을 버리고 오히려 험한 고난의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그를 축복합니다.

수14:13~14절을 보세요.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따라서 합시다.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할렐루야!

 

이렇게 마음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면 그 결과는 어떤 것인가요?

1) 건강과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갈렙의 고백을 보세요.

수14:10~11절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85세 나이에도 여전히 강건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강건케 하셨다는 간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게 되어 영이 건강하면 육체도 복을 받고 건강과 장수가 따르는 것입니다. 아멘?

성경을 잘 살펴보세요. 운동을 열심히 하면 장수한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새벽기도는 못 나와도 등산은 열심히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 순종하면 장수하고 건강이 찾아옵니다.

 

2) 믿음의 복을 받습니다.

24절 하반 절을 보세요.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가 갔던 땅이 어딥니까? 가나안 땅입니다.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하나님이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땅을 12명이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12명중 10명은 광야에서 다 죽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으로 순종했더니 그 땅도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3) 자손도 복을 누립니다.

24절 하반 절에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그렇습니다. 부모가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고 기뻐하며 순종하고 살면 본인도 믿음의 복을 누리지만 그 자손도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 당대에도 복을 주시지만 우리 후대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당대만 바라보면 안 됩니다. 우리 후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약속한 복을 400년 후에 후손이 누리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는 우리가 이렇게 살지만 우리 후손의 100년 후 200년 후는 어떨까요? 우리가 짧은 50년 세월 만에 이렇게 선진국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100년, 그리고 200년 후에는 우리나라는 어찌될까요?

아마도 세계 최강대국중 하나라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왜죠?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절대주권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 앞에 어떤 세력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앞에 문제를 비관적으로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시고 하나님 절대 주권적 신앙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복이 없습니다.

로마서 말씀처럼 마음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이 좋고 성품이 좋으면 그러면 우리 앞에 놓인 여리고도 문제가 안 됩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지 여자라 하잖습니까?

마음이 여호와를 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온전히 구별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포함 11곡 모음

 

01  저 높은 곳을 향하여
02  축복송 
03  참 아름다워라
04  온 맘으로 송축하리
05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06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되시니
07  하늘 가는 밝은 길이
08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09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10  축복송(노래)
11  만유의 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