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흰 눈 내리는 날

실크리버 2010. 12. 26. 22:43



 


      흰 눈 내리는 날 / 이해인


      흰 눈 내리는 날
      밤새 깨어 있던
      겨울 나무 한 그루
      창을 열고 들어와
      내게 말하네

      맑게 살려면
      가끔은 울어야 하지만
      외롭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사랑하는 일에도
      자주 마음이 닫히고
      꽁해지는 나에게
      나보다 나이 많은 나무가
      또 말하네

      하늘을 보려면 마음을 넓혀야지
      별을 보려면 희망도 높여야지

      이름 없는 슬픔의 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나에게
      어느새 연인이 된 나무는
      자기도 춥고 아프면서
      나를 위로하네

      흰 눈 속에
      내 죄를 묻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나의 나무는 또 말하네
      참을성이 너무 많아
      나를 주눅들게 하는
      겨울 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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