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Sweet Home”(1823) (John Howard Payne 작사, Sir Henry Rowley Bishop 작곡)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1823년 영국의 작곡가 Bishop, Henry Rowley (1786-1855)이 작곡한‘즐거운 나의 집’은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면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하리
저 맑은 바람아 가을이 어디뇨
벌레 우는 곳에 아기별 눈뜨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1)
'Mid pleasures and palaces though we may roam,
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
A charm from the skies seems to hallow us there,
Which, seek through the world, is ne'er met with elsewhere.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환락과 궁궐 가운데를 방황할지라도
초라하지만 나의 집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하늘나라의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할지라도
세상 끝까지 찾아봐도 어디서도 만날수 없네.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2)
I gaze on the moon as I tread the drear wild,
And feel that my mother now thinks of her child;
As she looks on that moon from our own cottage door,
Thro' the woodbine whose fragrance shall cheer me no more.
(chorus)
쓸쓸한 들판을 거닐면서 달을 쳐다볼 때
어머니도 이 자식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네.
어머니가 시골집 창문으로 달을 바라볼 때 피어있던
담쟁이덩굴 향기도 이제는 더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네.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3)
An exile from Home, splendour dazzles in vain;
Oh, give me my lowly thatched cottage again!
The birds singing gaily, that came at my call,
Give me them, and the peace of mind, dearer than all!
(chorus)
집에서 추방되고 헛되이 현혹에 빠졌네.
아, 다시 조그만 초가집을 나에게 돌려주오.
새들이 즐겁게 노래부르고 내가 부르면 달려오는 곳,
모두 다시 돌려주오.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의 평화를.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번역 zoo)
비숍 헨리의 ‘밀라노의 아가씨 클라리’라는 오페라에서 선율이 나온 곡인데,
이 선율에 가사를 붙인 사람은 미국의 극작가이며 기자였던 John Howard Pain(1792-1852)이다.
그는 알제리에서 사망 했다. 31년 만에 그의 시신이 군함으로 뉴욕에 돌아오게 되던 날,
항구에는 미국 대통령, 국무위원, 상원위원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나와 모자를 벗고
조용한 귀국에 환영과 조의를 표했다고 한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며 또 무슨 업적을 남겼기에 이처럼 추앙받았던 것일까요?
그는 고향과 고국을 사랑하며, 피를 같이한 부모형제 있는 허름한 내 집을 그리워하고,
구차해도 행복한 내 집을 노래하며 수많은 희곡과 詩를 남기고,'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
작사했기 때문이며, 또한 문화와 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미국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보물. 그것은 바로 가정인 것이다.
그가 1851년 3월 3일 C. E. 크라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한 얘기 같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라는 맛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할 것이오."
그는 이 편지를 쓴 1년 뒤 튀니스에서 집도 없이 거의 길가에 쓰러지듯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다가 고향인 워싱턴의 오크 언덕 공동묘지에이장되어 비로소 안주의 땅을 얻었다.
이 노래는 작곡가인 비숍의 조국 영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 이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 -
미국 남북전쟁 때(1862) 워싱턴시티 남쪽 레파하녹크 리버(Rappahannock river)전투는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양쪽 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으면서 낮에는 전투,
밤이면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서 양쪽 군악대는 매일 밤 음악회를 열었는데,
어느 날 밤 북군의 군악대가 '성조기의 노래'를 연주하자 남군은 '딕시의 노래'로 대항하다가
북군의 밴드가 HOME, SWEET HOME을 연주하자 남군의 군악대도 같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남북 모든 군인들은 텐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그들은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으로 뛰어나와서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취재했던 기자 프랭크 막심은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다들 미쳤다.'라고. 노래 하나 때문에 전쟁은 사라지고 오직 조국과 동포애만 남았던 것이지.
그로 인해 양쪽 군사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24시간의 휴전을 약속했다고 한다.
지난 3월부터 정성껏 지어온 나의 집...
이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편하게 살고자
그림 같은 집을 지어보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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