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대중 고문
유권자 절반 이상이 정권교체 바란다는데
민주당에 마음 못여는 것은 종북세력에 끌려다니기 때문
민주당이 북한 민주화에 나서면 집권할 만한 자격 갖출 것
최근 여론조사(미디어 리서치)를 보면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 수가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반드시 정권이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민주당으로서는 집권의 기회가 농후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수·우파 세력마저 한나라당에 환멸을 느끼고 있고,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도 복지·분배 문제 등에서 좌파적 사고에 동조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은 점차 고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집권당의 비리와 무능이 두드러지는 정권말기적 상황에서 국민의 마음이 현 정권을 떠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도 그 원인제공의 한 축을 이루고 있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당을 배제한 '시민단체 후보'가 등장하고 득세하는 상황은 기득권 세력, 특히 여당 측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 국민은 민주당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문제를 다루는 민주당의 태도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민주당이 친북(親北)·종북(從北) 세력에 이끌려다니며 이념문제에서 민노당의 2중대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종북적인 것이었다. 제주의 해군기지 건설 같은 국가적·안보적 사안에서도 민주당은 종북에 끌려다녔다. 손학규 대표가 '원칙 있는 대북 포용정책'을 언급했다가 당내 친북세력에게 크게 얻어맞으면서도 끝내 "종북진보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을 보면 민주당 내에서도 종북좌파를 둘러싸고 노선갈등이 심각하고, '종북진보' 세력이 판을 장악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특히 민주당이 각종 선거에서 단일화 또는 연합전선의 명분으로 민노당의 발언권에 저자세인 모습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당의 이념적 좌표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민주당의 집권 행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2011년 들어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천안함·연평도 사건,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수가 좌파적 접근방식에 우려를 나타낸 결과를 보면 국민들이 민주당의 친북·종북적 자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이 이념문제에서, 북한문제에서 종북(從北)의 끈을 끊는다면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집권을 점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별개로 하고 지금 세상은 복지의 시대, 분배의 시대, 정의의 시대로 가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가 경쟁하며 번갈아 정권을 맡아 나라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해오고 있다. 독일의 사민당, 프랑스의 사회당, 영국의 노동당, 일본의 사회당, 그리고 미국의 민주당이 진보·좌파가 이끄는 사회주의(유럽식) 정당이며 반공(反共)좌파 정당이다.
우리의 민주당이 갈 길은 거기에 있다. 보수·우파 정당이 자유, 시장(市場), 친(親)기업을 바탕으로 성장을 대변한다면, 진보·좌파는 평등, 복지, 친서민을 바탕으로 분배에 역점을 둬 나라가 성장과 분배, 시장과 복지의 추(錘)를 오가는 구도로 가야 한다. 거기에 '종북'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대한민국이 그런 패턴으로 간다면 이는 분명 북한의 전반적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북한을 돕는 이상적인 '친북'의 길이 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먹고 사는 문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처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정의(justice)'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해묵은 공산주의, 이미 시효가 끝난 주체사상, 세계가 손가락질하는 '김정일'을 되새김질하는 '종북'의 허위의식이 버젓이 하나의 '권력'으로 행세하고 있다. 앞으로 10여년간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 어렵고 험난하다. 세계 경제의 침체로 우리의 경제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국민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고 있다. 안보는 더욱더 심각한 부담으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시대적으로, 세계적으로 철 지난 '종북'에 매달려 있을 것인가? 이 '종북'이 대한민국을 가르고, 이 땅의 전통 있는 야당인 민주당을 가르고, 갈 길 바쁜 21세기 국민들을 가르는 상황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이 이제까지 보수·우파가 실수했던 것들, 소홀히 했던 것들, 그래서 민심이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에 천착하며 좌파의 리더십을 보수·우파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설정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충분히 집권할 수 있다. 민주당이 종북의 소아(小兒)에서 벗어나 북한의 민주화, 북한인민의 생존이라는 대승적 길로 나선다면 민주당은 집권할 가치가 있다. 문제는 민주당의 리더십이 종북의 끈을 잘라내고 "인권 없이 좌파 없다"는 프랑스 좌파의 길을 갈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그것을 이끌어 갈 용기있는 지도자가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