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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신앙 / 주님의 뜻

실크리버 2009. 4. 28. 13:46

주님의 뜻

 


    요한복음 8장 1절 - 11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가 보면 아주 어려운 때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進退兩難(진퇴양난)에 처하여 죽어야만 해결될 것 같은 경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이러한 고난에 몰아넣고서 망하게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하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사형 법에는 세 가지의 사형 법이 있습니다.

살인, 음행, 우상 숭배는 돌로 쳐 죽이라는 율법에 따라서, 돌로 쳐서 죽이는 법인데 즉각 자기들이 돌로 쳐 죽이지 않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예수 앞으로 데려 왔습니다.


  1. 돌로 쳐 죽이라 한다면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가르치는 주님의 말씀이 어긋나게 되는 것이요

  2. 여인을 무죄하다고 살려주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고, 음행을 묵인하거나 장려하는 자가 되는 것이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곤경을 주려는 목적으로 여인을 끌고 온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지혜 앞에는 항상 피하는 길이 있고, 해결법이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이시고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은 항상 해결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이때에 손으로 무슨 글자인지는 모르지만 땅에다가 글을 쓰셨습니다.

어느 성경 사본에는 그 여자의 죄목을 땅에다가 쓰셨다고 한 책도 있지만 아무튼 땅에다가 글을 쓰신 후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땅에다가 글을 쓰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첫째로 심판자에 대한 주님의 태도입니다.

1. 허물없는 자가 남의 허물을 논할 자격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법적 표준과 도덕적 표준과 종교적 계율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자기에게도 있는 허물인데 남을 서슴없이 비판하고, 심판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죄와 허물이 없으신 분만이 심판할 자격이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들도 이미 간음을 죄를 짓고서도, 간음자를 심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도 이미 간음을 하였다고 단정하셨는데,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심판주 되신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아서는 안 됩니다.

심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남을 칠 자격이 없습니다.


2. 다수가 정의가 아님을 말하여 줍니다.

  민주주의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옳은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모세와 아론과 60만의 대결에서 60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12 정탐꾼 중에서 10명과 두 명의 대결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옳았지, 다수인 열 사람의 정탐꾼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신본 주의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이 옳은 것이지, 다수가 옳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치려고 돌을 들고 모여 와도, 정의가 아닌 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정의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평양에서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신사 참배 문제를 국가 의식이니 예배 전에 동방 요배를 하고 신사 참배를 하자고 가결하였어도, 이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은 절대로 다수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혼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3. 너 스스로를 반성해 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반성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시간이 더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한번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나 자신의 죄를 돌아보며 회개하며 용서하며 사랑하면서 사죄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는 죄인인 여인에 대한 주님의 태도입니다.

1.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하노니-

  주님은 세상을 정죄 하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미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어 버린 사람을, 우리를, 나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정죄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돌에 맞아 죽어도 당연하다는 것을 시인하고, 이 사실을 갖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주님은 이 순간에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지르고, 죽을 죄를 지었어도 우리를 정죄하고 죄인이라고 못 박는 주님은 아니시고, 돌을 들고 죽이려 하는 자들을 막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구원하시는 주님이시지 결코 우리를 정죄하고 죽이려는 분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가 십자가를 대신 지고 대속의 죽음을 하시는 분이시지 결단코 우리를 정죄 하시는 주님은 아니십니다.  할렐루야 !


2.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주님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장래에 더 관심을 두시는 분이십니다.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나고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기를 더욱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과거를 묻는 주님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를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미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절대로 죄를 용납하시지는 않습니다. 괜찮다고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행위가 분명히 잘한 일은 아니지만, 이미 용서를 하였으니 다시는 죄인으로 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어서 새롭게 아름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실패한 베드로에게도 다시 한번의 기회를 주어 큰 사도로 만들어 사용하신 주님이, 당신도 다시 기회를 주어 크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내일을 의롭게 아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마귀는 죄인 된 우리를 죄에 얽어매어 두고, 죄 위에 죄를 더 쌓게 하여, 죄에 눌려 죽도록 하지만, 주님은 과거의 죄를 용서하시고, 미래를 의롭게, 아름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죽을 지경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남은 때를 죄를 멀리하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성결하게 살아가도록 힘쓰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